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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01 군대 간 친구에게 보내는 악마의 편지 (52)
TV/방송2008.03.01 15:37
저는 일단 남자라는 점을 밝힙니다. 남자에게 편지 쓰는건 어버이날에 아버지께 쓴거 빼고는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습니다. 스승의 날에도 편지를 안 쓴 것 같으니까요.

맨투맨 편지네요. 사실 이걸 쓰게 된 계기는 제 스스로의 성의라기 보다는 타의에 의해서 쓰게됬습니다. 군대간 친구의 여자친구분이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달라고 안달하셔서, 어차피 한번 보내려고도 했고 타이밍이 딱 지금인 것 같아 보냅니다. 군대갈때 여자친구 있으면 이런게 좋겠어요. 편지 써달라고 해주는 사람도 있고. 인터넷으로 쓰는 것보다는 직접 쓰는게 제 정성을 잘 표현할것 같아 직접 씁니다.

그런데 그냥 좋은 말만 쓰기에는 너무도 아쉬워서, 원래 친구들이 모여서 하는 장난보다는 많이 약하게 장난을 섞은 편지를 보내려고합니다. 원래는 오리지널 장난으로 올리려고했으나, 군대에 갇혀있다는 특수성 때문에 그놈이 성격이 변했을지 모르기에 수위를 많이 조절했습니다.

사진으로 준비해봤습니다. 일단 준비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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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편지지와 봉투, 그리고 펜입니다. 왜 휴대폰이 준비물이냐 하실분들을 위한 설명을 하자면 제가 원래 친구의 주소를 받았었는데 그걸 잃어버렸기 때문에 주위분에게 다시한번 물어봐야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휴대폰이 필요했습니다. 아끼는 하이테크 팬을 꺼내들었습니다.

이제 지금부터 필기에 들어갑니다. 편지 쓰는데 정말 시간이 오래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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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무려 3장이나 쓰여졌습니다. 확대해서 제대로 보면 뭐라고 썼는지 보이실거지만 읽기 힘들기에 제가 쓴 편지에 씌여있는 원문을 그대로 써드리겠습니다.

나의 절친한 벗, XX 보게

서면으로 라도 만나보게 되어 반갑네 허나, however, but 내가 자네에게 쓰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라는 건 내 보장하지. 자네가 입대한지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네. 훈련소 들어갈때 같이 동행하지 못했다고 너무 섭섭케 생각치 말게나 나도 생활이 있는 사람인데 마지막 날까지 자네의 뒤치닥거리만 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자네는 인생의 반려자와 함께 동행한다 하지 않았는가. 여자친구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자네의 여자 친구가 다른 남성과 다정하고 혹은 오붓하게 술집에 있는 걸 목격하였네. 학창시절 눈이 좋아 매의 눈으로 일컬어 지는 나였네만 이번만큼은 내 눈이 잘못된거라 믿고싶네. 하지만 행여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너무 노여워 하지 말게나. 서로 죽고 못사는 커플들도 헤어지는 경우가 태반인데, 매일 싸우던 자네 커플은 무사할거라 생각하는겐가. 그런 철부지 같은 생각은 군대 화장실 변기통에 버리도록 하게나.

그나저나 자네의 생활은 어떠한가? 들려오는 얘기들로는 규칙적인 6시 기상에, 짜여진 계획대로 움직이고, 영양가 놓은 식단에, 자연으로 둘러쌓여 심신수련까지 받는다 들었네. 집에서 TV프로그램이나 챙겨보고, 나가 놀기만 하는 나같은 한량이 보기에는 부럽기 짝이 없네. 저런 혜택에 + 돈까지 받는다니 이건 차라리 기적일세. 게다가 자네 같은 무뢰배에게는 이런 틀에 박힌 계획적인 삶이 자네를 갱생하는 새로운 교육의 장이 될걸로 믿어 의심치 않네. 자네에게 있어 군대는 유토피아이며 지상낙원일세.  그러니 어린아이처럼 투덜대지 말게나. 우리가 나눈 5년의 우정에 비하면 군대에서 보내는 2년 따위는 불가에서 얘기하는 "찰나"의 시간과 다를바 없을테니 말이네.

자네가 사회 소식을 접하지 못했을거 같아 몇자 적어서 보내내. 자네가 그토록 좋아하던 원더걸스, 소녀시대들은 왕성한 활동 중이고, 자네가 환장해 마지못하던 자밀라는 가수로 데뷔한다고 하네. 아차차... 자네에게 쓸모없는 말을 하여 미안함세.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자네가 속세의 처자들에게 관심을 둘리가 만무하거늘 내가 망발을 했네.

겨울이 봄이 오는걸 질투하는건지 날이 많이 춥네. 그렇다고 건강하고, 감기 조심하라는 얘기는 하지 않겠네. 옆에 있는 든든한 전우들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겠나. 사내들끼리 멋지게 지내보게나.

친구여, 혹시나 노파심으로 얘기하는건데 이편지에 복수할 요량으로 "군대는 ~가 좋다" "요새 군대 좋아"따위의 말은 입 밖에 내지도 말게나. 살기 좋은 시궁창과 그냥 천국의 차이니까 말이네. 자네만 힘들어질터이니.

다시 만날 날이 오기나 할지 모르겠으나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이만 줄이겠네.

추신. 자네는 어찌하여 내가 휴대전화로 연락을 취하면 받지 않는겐가? 배터리 나간거니?

자네의 절친한 친구, XXX 씀

이게 제가 쓴 편지의 전문입니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원래 이것보다 훨씬 심한 말들을 할 정도로 무지 친한 사이 지만 군대에 있는 심리상태를 고려하여 약하게 적어서 보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간 애한테 저게 뭐냐 그런식의 리플은 글을 읽어보셨다면 달지 말아주세요.

마지막으로 이제 편지를 접어서 봉투에 넣고, 주소를 씁니다. 여기가 포인트 인데요. 보내는 사람 이름을 저 말고 여자 이름으로 적겠습니다. 행여나 "이놈, 말은 이렇게 해도 친구를 생각하나보네..? 남들한테 부러움 받으라고 여자이름으로 적어주다니 센스 있는데?" 라고 하실 분들을 위해서 말씀드립니다. 단지 저는 군대에있는 친구가 편지 보내는 사람에 적힌 여자이름을 보고 어떤 설레임과 어떤 궁금증, 그 찰나의 행복을 주고 그것마저 빼앗아서 절망으로 만들어버리려는 악마의 계략에 지나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제 우표 붙히고 우체통에 넣으면 끝! 답장이 기대됩니다.

※ 주의 :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원래 이정도 장난에 면역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 저런 내용의 편지를 보낼시에는 절교는 물론이거니와, 국가 안보에도 심각한 위험을 끼칩니다.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이 너무너무너무 궁금하다 하시는 분들은 추천과, RSS 구독 부탁드리겠습니다.
Posted by 에스 비